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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말씀 요약2024 여름수련회 [Only One Masterpiece] 2024. 9. 14. 15:58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개회예배
제 목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눅 5:1-11)
설 교 : 임재범 전도사님
본문말씀 : 누가복음 5:1-11
말씀요약 : 샬리브_이예은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MzkpHAz8zeE?si=jOtOT7YK8mxrWgJx마음을 열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하자!
더보기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아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고 깊이 있게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건 단순히 그 사람의 직업은 무엇이고 가족관계는 어떤지 등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감정, 의지를 아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있게 만난다는 것은 정보를 아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지, 정, 의(생각, 감정, 의지)를 아는 것이다. 사람 관계에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면 나를 희생해서라도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을 때가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을 따라 내 삶을 드려 무언가 행하게 되고, 주의 일을 감당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어부인 베드로는 밤새 물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못 잡고 돌아오게 되자 실망감과 허무감을 느꼈다. 물고기를 잡지 못했기에 배가 비어 있었고, 그렇게 빈 자리가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그 배에 타실 수 있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자는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담하여 마음이 빈 사람들이다. 큰 성공을 위해, 혹은 행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잡을 수 없었던 자, 참된 진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마음이 빈 사람들이 결국 주님을 모시고 만날 수 있다. 즉, 갈급한 심령이 주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를 옅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만나는 자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갈급한 심령을 가진 자다. 그런 자들이 주님을 향해 나아가고 주님을 만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신다(마 5:3-8).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갈급한 심령을 갖기 어려운 분주한 시대이다. 세상은 너도 성공할 수 있다며 이것저것 해보라는 헛된 믿음들을 심어준다. 그렇게 행복을 좇아 살아가며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남은 건 허무감뿐이다. 허무는 한자로 빌 허(虛), 없을 무(無)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땅의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인데, 그 안에서 무언가 찾고자 노력했고,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허무함만 남게 된다. 세상은 돈을 많이 벌어 비싼 물건을 사고, 비싼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 거라 말하고, 이걸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저걸 하면 진리를 찾을 것이라 말하며 우리를 속인다. 그러나 결국 남는 건 허무감과 허망함뿐이다. 그걸 깨달은 자가 주님을 찾는다. 분주한 삶 가운데 모두가 허무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정신없이 살며 그 마음을 숨기고 살아간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분주한 삶을 잠재우고 자신의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을 돌이켜 봤을 때, 비로소 주님을 향한 갈급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면, 주님께서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신 것처럼 천국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이 내 심령 가운데 오셔서 깊이 있게 주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을 만난 자들은 어떻게 변화될까?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를 ‘선생’이라 부르지만(눅 5:5), 예수님을 만나며 ‘주’라고 부른다(눅 5:8). 말씀을 들으며 내게 좋은 말로 훈계를 해주는 선생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종인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주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우리 부모님 말고 나를 통제하는 누군가가 또 있어 갑갑하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운전하다 보면 유기견이 돌아다니는데, 가끔 차도에 뛰어드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강아지가 멋대로 돌아다니며 사는 모습을 보고, ‘저 강아지 참 자유롭구나, 참 행복하겠다.’ 하고 느끼는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저 강아지의 주인이 빨리 와서 데려갔으면 좋겠다.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씻고, 좋은 보금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이 없는 우리 인생은 망나니처럼 돌아다니는 유기견과 같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떠돌이처럼 허망하게 돌아다닐 뿐이다. 우리에게 주인 되시는 주님이 있다는 것은, 나를 억압하고 억제하고 통제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망나니처럼 살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를 붙잡으시고 가야 할 길을 알려주며 인도해 주시고, 나를 먹이시고, 보살피시고, 돌봐주시는 양육자이자 주인인 주님이 계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내 삶이 바뀐다(요 14:6). 길 되신 주님을 따라가게 되고, 생명 되신 주님을 만나 생명을 얻게 되고, 진리 되신 주님을 만나 참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수련회장 가운데 해결 받아야 할 문제들과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왔겠지만, 모두 내려놓고 단 하나 가장 중요하게 붙잡았으면 좋겠는 마음은, 주님을 깊이 만나는 것이다. 이전에도 주님을 만났지만, 오늘도 주님을 만나야 하고, 수련회장에서도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살아갈 힘이 없다.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고 만나며 그에게 생명과 진리를 얻어 변화되어야 한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자신의 허무한 심령을 돌아보며, 갈급한 심령 가운데 주님을 깊게 만나고 돌아갈 수 있는 대학부 되길 소망한다.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첫째 날 저녁성회
제 목 : 신으로 부르심
설 교 : 윤승철 목사님
본문말씀 : 요한복음 10:35
말씀요약 : 제이스토리_이소영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U6PO5TlXNlM?si=-5271l6Y23DH8y5R신의 성품으로 사랑하며 만들어져 가는 only one masterpiece
더보기Only One Masterpiece란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는 성삼위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냥 만드시는 것도 아니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하신 그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며 피를 다 쏟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으며, 하나님 안에만 계셔야 하는 그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교통하시면서 수고하고 헌신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품은 교회이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께서 피로 그 값을 주고 사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이처럼 오직 유일한, 누구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삼위의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교회이다. 단지 그냥 힘을 좀 써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34)라고 하는 절규를 들으실 만큼 아들을 외면하시는 쓰라린 아픔을 감당하셔야 했다. 아들도 아버지께 버림받는 그 버림을 당하면서 십자가에 자신의 피를 다 쏟아야 하는 그런 아픔을 감당하셔야 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신과 같은 영광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지이고 의도이다. 신과 연합되어서 신과 같은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신의 나라를 통치할 그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 후사로서 영광을 같이 얻기 위함이다. 또한 신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삶은 사랑이다. 신은 인간을 위해 아들을 주셨고 자기의 몸을 다 찢어서 피를 다 쏟아 주셨다. 신은 그러한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도 침례로 옛사람을 버리고 신처럼 살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고, 신처럼 살아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와서 몸부림치는 것이다. 신처럼 살려고, 신의 성품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살지 않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고, 신과 같이 살려고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육체를 가진 존재인 우리는 굉장히 열등하고, 한편으로 보면 저주받은 존재들이다. 일생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종노릇하는 자들이다. 육신의 죽음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눈만 뜨면 어렵다.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사랑하라는 계명은 너의 행복을 위한 계명이라 하시고, 그러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다(신 10:13). 사랑하며 살라고 하면 미워하지도 못하고 사랑만 해야 하기에 불행할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하며 사는 삶 안에 우리가 찾는 행복과 평안, 자유가 있다. 우리에게 불편해하라고 주신 계명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에 참 평안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본분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다. 계명을 어겼다가 쫓겨나듯, 반대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신자’들이 들어가 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죽어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오히려 임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신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 나라가 삶과 가정 가운데 임한다. 이는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할 때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
교회는 원래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Only One Masterpiece이다. 우리 안에 신의 성품을 주고, 예수 같은 마음을 주어서 우리를 신의 모습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신다. 단 하나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아버지의 수고를 다 하셨고, 아들은 아들의 수고를 다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하며 그가 우리를 위해서 하셔야 할 일을 다 이루고 가셨다. 그리고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 하셨고,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가신다. 우리가 성령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회개하게 하신다. 신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마음을 계속해서 변화시키신다. 그렇게 변화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람끼리 사는 교회와 가정이 얼마나 행복할까. 신의 성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당신의 피를 다 쏟아 주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와서 계셔야 한다. 오늘 교회와 가정에 주신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 하신 사랑의 계명이다. 사랑하되 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다(엡 5:22-25). 교회는 신자들이 모여 있다. 신자가 ‘믿는 자’라는 말도 되지만 ‘신의 자식들’을 신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받은 신의 자녀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죄인들이 사는 곳은 지옥이고, 신들이 사는 곳이 하늘, 즉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신들만 누리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이지만 아름답게 사랑하면서,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을 때 우리도 똑같은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하늘의 영광과 행복은 아들을 위하여, 아들로 말미암아 지었다고 하신 것처럼, 아들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누릴 때 우리도 아들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려고 우리를 독특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서 서로 연합되는 것이 교회이며, 하나님의 작품이다. 우리는 그러한 작품으로 부름을 받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순종하면 성령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면 그러한 신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사랑할 수 있는데, 충만하지 않으면 미움과 원망이 올라온다. 우리는 신처럼 살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처럼 신의 성품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게 살려고 결심하면 성령이 지원하신다. 사랑만 빼놓고 다 버리자. 내 안에 오직 사랑만 있고, 어둠이 없이 오직 빛만 있도록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회개하고 기도하자. 그렇게 하면 남도 행복하지만 내가 행복하다. 나를 보고 내가 놀라고, 내 마음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감탄하게 된다. 나같이 이렇게 못되고, 악하고, 더러운 자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 돌리게 된다.
내 안에 사랑이 아닌 것이 있다면 버리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7) 하신 말씀처럼 거룩한 성전엔 신의 성품만이, 즉 사랑만이 있는 것이다. 그분을 모시기 위해 사랑 외에는 다 버리는 게 우리 예수 믿는 신자들이다. 내 안에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와 같은 것들이 있음과 내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알고, 성령을 의지해서 매일 못된 것을 버리고, 떼어내어 버리고, 버리고 하다 보면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Only One Masterpiece가 될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나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둘째 날 저녁성회
제 목 : 돌아가자!
설 교 : 윤승철 목사님
본문말씀 : 누가복음 15:11-24
말씀요약 : 제이스토리_박시현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ogljlxNm_QE?si=j7VQ-H2Q4Hpwvb09미워하는 죄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결단
더보기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하라”(막 12:30-31)이다. 성경도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게 말하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사랑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가 침례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이고, 하늘에 사는 것이다(골 1:13).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마귀가 우리를 하늘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죄짓고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끌어내려고 한다. 배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몸이자 하나님 나라인 교회 안에서 이간해서 우리를 끌어내려고 마귀가 계속 시험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내가 나를 위해서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내 몸이 걱정하는가? 머리가 다 고민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먹고 살까, 무엇을 먹을까 머리가 늘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하신 것이다. 그것이 몸을 가진 사람의 본능인 것처럼, 주님의 교회 안에 들어와서 주님의 몸이 된 사람은 머리 되신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어도 하나님 나라 밖으로 쫓겨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제목처럼 ‘다시 그 나라로 돌아가자’라고 하는 것이다. 탕자가 집을 떠나 돈이 다 떨어지게 되어 남의 집 종살이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그가 먹을 것은 없었다. 그러니 그제야 깨닫고 ‘내 아버지 집에는 종들이라도 풍족하게 먹고 사는 품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그 집 아들인데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 한 것이다. 교회 안에 영적 부요가 다 있는데(엡 1:23), 몸만 교회에 있고 심령은 하나님 나라 밖에 사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평안도 없고, 자유도 없고, 괴롭고, 우울하고, 어둡다. 하나님 나라 밖이 (마 25:30)에 나오는 바깥 어두운 곳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분이 설교하실 때 탕자를 비유하는데, 탕자가 염치가 없어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아버지, 제가 집에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갈 염치가 없습니다. 만약에 저를 용서할 마음이 있으시다면 집 앞에 조그만 하얀 깃발 하나만 꽂아주세요. 내가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깃발이 꽂혀 있으면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기차를 타고 ‘깃발이 꽂혀 있을까, 안 꽂혀 있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는데, 그 아버지가 조그만 깃발 하나가 아니라 혹시 아들이 못 볼까 봐 철로 양옆으로 깃발을 쫘르륵 꽂아 놓고, 나와서 큰 깃발을 들고 휘두르면서 “아들아, 돌아와라!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는 그 설교를 듣는데 정말 눈물이 났다. ‘하나님이 우리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를 얼마나 원하시는가…’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있다가 왜 밖으로 나가는가?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나라이기에 죄가 있으면 쫓겨나는 것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한 가지 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레위기에서 가나안이 왜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했는가 하면, 그 땅의 사람들이 타락하고 죄를 범해서 그 땅이 그들을 토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는 백성들도 죄 때문에 그 땅이 토해 버렸는데, 죄를 가진 자를 하나님의 나라인 주님의 몸이 수용하겠는가.
그 땅이 토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레위기 18장, 20장을 보면 모두 간음한 이야기이다. 창세기 4장에서도 가인이 쫓겨났는데,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해서이다. 우리가 주님께 사랑의 계명을 받았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다. 내가 침례받을 때, 내가 주님의 몸이 될 때, 사랑하기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다. 감정으로 미움이 생길 때 생각과 감정대로 미워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의 심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고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무할례자가 된다고 한 것처럼, 침례받아서 주님의 몸인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갔어도 내가 사랑하며 살기로 약속한 그 계명을 어기면 그는 하나님 나라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환경은 사랑이 절대적이다.
내가 주님의 몸이 되면 내가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주님이 머리 되시니 나를 책임져 주신다. 그런데 몸의 특성, 즉 하나님의 자녀의 특성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이유는 형제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도 모든 죄는 몸 밖에 있지만 간음은 자기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는데, 주님의 몸 안에 들어와서 그 몸을 해롭게 하는 자는 몸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잔인하시네.’ 누가 내 몸에 있는 암을 수술해서 떼어 냈다고 잔인하다 하겠는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요일 3:9)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해하는 몸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 몸이 살려면 우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몸이 유지될 수가 없다. 우리는 마치 방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방주 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래도 방주 밖에 나가면 망하는 것이다. 안에 있어야 사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멋있는가. 자기에게 조금 섭섭하게 했다고 미워하고 말도 안 하는 것이 사실 얼마나 유치한가. 그러나 욕하고, 싫어하고, 침 뱉고, 때려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신 같은 걸작품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신부로서 그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성령이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 것이다. 그것이 Only One Masterpiece이다.
에덴동산에서 왜 쫓겨났는가? 선악을 알아서 쫓겨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쫓겨나는 것도 거의 100% 선악을 알아서이다. 남에 대해서 판단하고, 교회를 판단하고, 목회자를 판단하니까 못마땅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다 죄인인 것이 맞다. 그러나 주님의 몸이 되었으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해야 될 것이 교회이다. 나의 허물과 연약함들은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회개하고 자유할 수 있다. 수십만 번의 죄도 은혜로 덮어주시니까 은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러한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모습은 은혜받을 자격을 박탈시켜 버리는 것이다. 은혜를 버리면 망한다.
사랑이 아니면 신앙생활을 성공할 수 없다. 사랑은 우리 영혼이 이 세상을 이기고 주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장치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게 된다.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멸망하는 것이다. 용서 못 하면 지옥 가야 된다. 지옥 갈 만큼 어려우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용서 못 할 사람이 어디 있나.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평안, 자유, 생명이 임한다. 그렇게 행복한 나라에서 우리가 살기를 아버지는 원하신다. ‘하나님, 나 다시 돌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갑니다.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랑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기도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셋째 날 저녁성회
제 목 : 주의 종, 주의 친구
설 교 : 김성현 감독님
본문말씀 : 요한복음 15:12-15
말씀요약 : 제이스토리_김태현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5_8By0CEQok?si=mBDf1MTvlNzFAaWm희망 없는 세상에 사랑으로 나타나사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신 소망의 구주
더보기인류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은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수 믿는 삶은 가장 귀하고 보람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우리 사는 세상이 주님께서 무엇을 명하고 가신 지 상당 시간이 되어 믿음이 식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효력을 잃었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우리에게 임박한 모든 것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입장에서 양들을 나와 동등하게 생각하며, 우리의 입장을 알려주고, 답답한 마음을 공유하여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어 후회가 없게 하려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역할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고 방법론이 있다. 상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있다. 받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큰 은혜 받은 것에 대해 알고 있다면 큰 종들이 되는 것이다. 성도이자, 구원받은 자이자, 주의 종이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당연히 종이 되는 것이다. 노예가 아닌,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것에서 멈추면 문제가 된다. 우리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할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목사들은 해야 할 일에 대해 전해주어야 한다. 일을 주며 하나님과 성도들을 연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난 성도들과 하나님을 충분히 연결하고 싶다. 난 이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이 일을 전달하고 타락하는 것은 내가 책임지지 않지만 전달하지 않는 것엔 책임이 있으니 난 이 책임을 피하고 싶다.
오늘 나는 이 수련회를 하며 특별한 기대를 한다. 몇 십년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목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라 명하시고 가신 것같이 우리도 이와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식어서 임무, 약속이 덜 지켜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우리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와 여러분이 주님을 주로 모시고 교회로서 함께하여서 주님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성품적으로 우리의 삶을 잘 이끌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이 후회가 없으시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기다렸던 것같이 우리의 삶도 그와 같다는 것을 알고 대충 하는 신앙생활을 버리자.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기대가 큼을 마음속에 새기자.
이 세상은 망하고 있다. 완전히 썩어지고, 이 세상의 전부가 망하는 형세이다. 우리가 익숙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악하다. 시편을 보았는가? 시편의 내용은 '이 인생이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악인들의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처벌하여 주실 것을 기다리며 의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인내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상 주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다.
모든 사람은 죄로 썩어있다. 우리마저도 많이 오염된 상태에 놓여있다. 세상은 악해야 산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 훔쳐 가고 빼앗아 갈 것이다. 이 세상의 조금의 선을 보고 '이 세상에 천국이 임할 것이다'라고 생각지 말라. 그냥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의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다.
또 늙으면, 죽으면 끝나는가? 심판이 있다. 모든 불의, 악행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 이후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니 성경은 그를 사자와 어린 양이라 하였다. 사자는 가장 잔인한 포식자고 어린 양은 가장 희생적인 모범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엇에 대해 심판받는 것인가? 어느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닌 도덕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와 도덕적인 부분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니 악한 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예수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회개를, 복음을 선포하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의 여러 형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주께서 구원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온 세상이 그것을 믿기를 원하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이 땅에서 권위주의적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거짓된 신앙을 보셨다. 종교적인 습성은 있지만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였다. 이간시켜서 죽였다. 이를 보며 우리 또한 경계해야 한다.
예수께서 온 에너지를 다 쏟으신 것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신 일은 제자를 기르는 일이었다. 3년 반 동안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셨고, 자신을 보이셨고, 사랑하시며 섬기셨다. 온유한 모습과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셨다.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셨으니 주님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시지만, 통치자이시며 심판자이시다. 주님은 주인이시다. 고대의 개념으로는 고용해서 쓰시는 이시다.
그런데 주님이 명하신 대로 하는 자를 친구라 하셨다. 우리에게 친구라 하신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으니, 사랑하라 하신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주의 사랑을 되뇌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내 교회를 돌보며 서로 사랑하면, 지체들끼리 서로 사랑하면 내 분신 같은 교회를 사랑하므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라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돌보아야 할 내 인생이 바빠도, 시간도 뺏기고, 기회를 놓치며 살아도 "너희는 나의 친구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명하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어렵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를 진실로 대하셨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셨으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한다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늘에 가시기 전에 우리와 하나님의 완전한 연합에 대해 간구하셨다(요 17).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관계에 넣기 위해 작정하신 것이 드러나 있다. 우리를 구원이 되게 하여 주사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 계획을 말씀하시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신학적으로는 완전한 소외를 당하며, 제자들의 배반, 하나님의 외면이라는 가장 무서운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일부러 내어놓으신 것이다. 목숨을 다하신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은 권위에 따르는 복종이 아닌 그가 영원한 결단으로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우리의 짐을 없애주기 위해, 소망을 갖고 견뎌가게 하기 위해, 처참한 지옥에서 영원히 썩지 않게 하셨다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물으신 주님의 물으심은 친구라 말씀하신 것과 같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신했음에도 주님은 물으시지 않고 오히려 내 양을 먹이라, 치라 하셨다. 죄인에게 맡기셨다. 내가 의로웠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빚졌기 때문에 주께서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미움을 날마다 가지는 더러운 자지만, 이제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죄를 짓냐 안 짓냐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새로 태어났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간하려는, 미워하려는 죄의 속성을 다스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교회로 와서 회복되게끔 해야 한다. 또한 영혼을 보전하도록 해야 하니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도록, 살인하지 않도록 보전해야 하는 것이다.
시대를 지나며 과거를 접고 지금 달라져 있는 것을 따라가야 하니 꼰대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높은 이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높아지려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은 그러한 문화가 있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높아지려 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섬기는 자,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은 우리 마음이다. 본성 때문에 넘어지긴 하지만 그렇지 않도록 결단해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니 죄의 반대는 사랑이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분열 사태는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망각한 것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죄를 멸하러 오신 것이다'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전체의 자세를 바꾸고 회개해야 한다. 주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이다(시 12:2-4).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양심이 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이를 글로 나타낸 것이 의문의 법, 율법이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에서 도덕과 양심을 무시하면 안 된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자. 교회 안에서 고난이 풀어지고, 힘을 얻고, 지칠 때 위로받고, 사랑받고, 소망을 격려받게 하자. 견뎌갈 수 있도록 하자. 우리의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않다. 영원한 보람이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모든 것이 가하나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은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벧후 1:3). 우리의 친구 되신 분이 우리를 그렇게 챙겨주셨다. 세상에서 살며 우리는 정욕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되지만 교회 안에서는 주의 은혜만 충만하게 하자.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다. 주님이 자신을 낮추어 우리를 친구라 하심같이 우리도 교회를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침례받은 자는 다 그렇게 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자가 되자! 주님을 믿자! 주님께 우리를 맡기자! 내 인생도 챙기고 교회도 챙겨야 하므로 어렵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제자가 되자! 주의 종 같은 자가 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파송예배
제 목 : 복 있는 사람의 새로운 삶
설 교 : 이찬희 사역님
본문말씀 : 고린도후서 5:17-19
말씀요약 : 제이플랜_하연경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5ev1p6PwRmo?si=w9Ow1M8Pe0Y7r8zY어디서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더보기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새롭게 되었다. 우리가 수련회 시간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체험했다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날마다 시인하며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악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새로운 피조물임을 기억하지 못하면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 내 속사람과 겉사람이 충돌을 일으키고, 예전의 모습이 나에게 여전히 있지만, 나는 속사람을 계속해서 시인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 승리하는 모습이고 복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짧게 느껴지는 3박 4일의 수련회지만, 두 달 전부터 수련회를 준비하던 분들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섬겨주고 사랑해 주는 자들 덕분에 수련회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음을 시인하고, 그의 자녀임을, 그의 친구임을 시인하는 자가 섬기는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섬기는 것이 누군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섬기는 자가 되면 좋겠다. 또 섬기는 자리가 바뀌더라도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렵더라도 하나님께 마음을 맡기고 나아가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해 가실 것이다.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자.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온유함을 나타내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섬기는 대학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맡겨진 모든 순간에 “아멘” 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자(고후 1:19-20).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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