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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별 강의 및 특강2024 여름수련회 [Only One Masterpiece] 2024. 9. 14. 22:54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오전특강
제 목 :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
설 교 : 윤은선 사역자님
본문말씀 :
말씀요약 : 에셀나무_김가은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nhFhLDhmXi0?si=gPzWImj0tRgMlpoD그리스도 안에서 질서로 하나 된 유기체: 교회
더보기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쓸 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쓴다(엡 1:3-12). o, x 퀴즈를 예로 들자면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도 중간 지대란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거나 혹은 세상에 있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디에 속할 것인가?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엔 마치 중간 지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 몰라도 심판할 때는 굉장히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원래 우리는 세상에 있었고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중간에 죄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로막힌 것을 예수님이 자기 몸을 찢으셔서 길을 여셨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살도록 세상에서는 장사 지내라는 것이다.
천국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다?
예수님께선 천국에 대해서 많은 비유를 하셨다. 그중에서는 물고기를 잡는 비유가 있다.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지만 전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검수해서 좋은 것만 가져간다(마 13:47-50). 이처럼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분류하실 때가 있다.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천국을 확보해 놓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혼인 잔치의 비유가 있다. 혼인 잔치에 예복을 입고 오지 않는 자는 쫓겨난다(마 22:1:14).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했다.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성의는 갖춘 상태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방치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해지도록 노력하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의인 중에 악인을 걸러낼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마 25:32),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인지 점검해야 한다.
1. 하나 됨 - 유기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하나 되는 것이다. 눈, 손, 발 등 지체가 따로 있으면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지만 한 몸이 되면 기능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돼야 한다. 눈이면 눈, 코면 코, 그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면 된다. 세상은 죄에 익숙해서 서로 분열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분열되는 것은 온전치 못한 것이며 비정상이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졌던 생각의 체계를 바꾸고 하나 되어야 한다.
2. 공동체 생활
교회는 공동체 생활이다. 우리를 하나 됨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나는 원래 이렇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나는 원래 이렇다’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거절하는 것은 온전치 못하다. 하나 됨을 잘못 이해하면 나와 주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만 생각하게 되어 나 혼자 열심히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오해하게 된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원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주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이다.
같이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간단한 예시로 밥을 같이 먹으려고 해도 각자 먹고 싶은 게 다르다. 함께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공동체 생활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를 버리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인 교회 생활이다.
3. 질서가 있음
함께함에 있어 내가 원하는 사람들끼리만 함께할 순 없다. 그것은 하나 됨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분열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은 질서가 있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나라인 공동체에서는 정돈된 질서 속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 질서는 권위를 바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권위적이다. vs 권위가 있다.]
‘권위적이다.’라는 말은 권위를 내세우면서 대우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권위가 있다.’라는 말은 실제로 위치와 지위, 힘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권위적인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찍어 누르는 것으로 권위를 세우는데, 교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교회는 겸손함을 통해 온전한 권위를 세운다.
4. 겸손
[ 이사야 14:13-15 vs 마태복음 20:26-28 ]
이사야 말씀은 타락해서 하나님과 맞먹으려는 마귀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높이실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교만한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과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신지를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여기까지 4개의 항목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 알아보자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고 말한다.
신앙은 주님과 결혼하는 것
(호 2:19-20) (엡 5:31-32).
내가 주님과 결혼한 관계라는 것은 곧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룰 때는 혼자일 때와 다른 점이 많다. 이전에는 혼자 결정했던 것을, 결혼하면 같이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인생의 가치관이 안 맞으면 결혼 생활이 무척 힘겨워진다. 주님은 우리와 맞지 않은데 먼저 손을 내미셨다.
(요 5:13-15) 이 말씀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는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이고,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다.
(엡 5:25)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 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목숨을 버려 사랑하신 것을 말하고 (엡 5:22-23)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신 것은 교회가 머리 되신 주님의 명하신 대로 행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신랑 신부의 관계는 얼굴만 보면 설레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해도 신뢰할 만한 친구라는 말이다.
충실하다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나는 주님께 믿을 만한 사람인가?
남녀가 결혼해서 같이 살면 서로 죄인과 죄인이 만난 것이기 때문에 부딪힐 것투성이다. 그래서 서로를 감당해 주는 것이 결혼 생활의 핵심이다. 그런데 주님은 너무 완벽하고 우리는 너무 부족해서, 주님은 늘 우리를 감당해 주시기만 한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다(요 13:34-35).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전이해서 주님의 교회를 감당하고 그것으로 주님과 맞춰져 가게 하셨다.
성숙한 사랑은 내 감정과 내 요구를 모두 말하고 들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절제와 배려로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다 보면 먼저 사랑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 아픔은 나를 먼저 사랑하셨던 주님의 아픔을 알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절제하고 교회를, 옆에 있는 영혼을 사랑할 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
만약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앞서 말했던 모든 것이 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면 받은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장사 지내고 교회가 되자(엡 2:10).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또래별 강의 -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
제 목 :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
설 교 : 심주희 사역자님
본문말씀 : 빌립보서 3:8-12
말씀요약 : 에셀나무_박민주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에 대해 온전히 알고, 성장하고, 어디서나 충실한 모습을 가지자
더보기“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8-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은 나를 책임져주시는 분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신앙의 삶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를 보호하시고, 치리하시고,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요,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며, 나와 늘 함께하시고 영원토록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는 이가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고 신앙의 생활이 행복해진다. 삶과 신앙이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 만드는 이 시기(20대 초반)는 중요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나이고, 가장 평안을 체험해야 하는 나이다. 가장 많이 넘어지고 실패하고 많이 울기도 해야 하는 나이의 때다.
1. 나에 대한 온전한 이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나의 신앙을 빚어야 한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만약 신앙 안에서 나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사람을 오해하고, 나를 오해하게 된다. 오해는 잘못 만들어진 생각이다. 이 오해는 건강하지 못하기에, 삶과 신앙 가운데서도 아프고 병이 든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를 병들게 두지 않으시며, 병든 것을 온전케 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살 수 있다. 성령을 사모하는 자, 갈급한 자, 살고자 하는 자에게 예수 이름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삶과 신앙을 같이 해야 한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창 4:8-15)
가인의 죄와 우리의 죄는 동일한가? 하나님께선 마음의 생각까지도 감찰하시기에 우리의 죄와 가인의 죄는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죽인 자에게는 벌을 칠 배나 주고, 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음을 면케 하신다고 하셨다(창 4:15). 이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모난 것이 많아도 나 좀 봐달라는 작은 신음이라도 외치면 하나님은 그 작은 소리도 들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시가 없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영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빚어가고, 신앙을 만들어가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오해를 해소한다.
하나님이 가장 아프고 괴로워하시는 것은 내가 성장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며, 자라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벗어 던지는 것이 우리 신앙의 생활이고 삶이다.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 6:5-11)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사용되고 쓰임받을지 모른다. 만약 모임과 봉사로 인해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 거룩한 거절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것으로 남 탓, 교회 탓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지만, 삶과 신앙을 감당할 수 있는 능과 능력을 주신다고 하여도 내가 게으르다면 현실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개미처럼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딤후 2:22) 모임 안에서 항상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깨뜨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습관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선 내 모임 안에서 나를 자라나게 하신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딤후 2:24) 주님의 사람은 다투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긍휼히 여겨줘야 한다.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선 나를 비워야 한다. 모임 안에서 내 기준은 무너져야 한다.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인이 참 원하시는 것은 성장과 자라남이라는 것이다.
3. 꾸준하게 사랑받는 것의 중요성
꾸준하게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좇지 아니하고, 우리는 모임도 열심히 나오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신앙의 생활을 해야 한다. ‘네가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거야.’ 한 명, 한 명의 영혼들을 하나님께선 너무나도 사랑하신다. 또한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또래별 강의 - 삶과 신앙
제 목 : 삶과 신앙
설 교 : 이경희 사역자님
본문말씀 :
말씀요약 : 샬리브_김창훈비전을 준비함으로 삶과 신앙을 이어가는 우리
더보기우리 강의의 제목은 ‘삶과 신앙’이다. 제목을 보면 마치 삶 vs 신앙,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 vs 미래를 준비하는 삶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삶은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일까? 흔히 삶을 교회 밖에서의 일상이라 생각하고 신앙을 교회 안에서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강의에서는 삶과 신앙은 분리되거나 구분될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과 교회 밖에서의 삶 모두 주님의 인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려고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삶과 신앙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을 살다 보면 삶과 신앙이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삶과 신앙을 이을 수 있을까에 대해 오늘 강의를 통해 이야기할 것이다.
사실 교회에서는 ‘신앙’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들어도 ‘삶’이라고 느껴지는 생활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잘 듣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삶’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말하고자 한다. 특히 ‘삶’ 중에서도 여러분들의 나이대를 고려하면 취업이나 학업, 직장 생활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분들은 직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들 본인만 안다. 내가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아무도 나 대신 답을 찾아줄 수 없다.
우리가 직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에 앞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교회는 우리의 직업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보내고 봉사한다고 해서 직업이 저절로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교회에서 일하다가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이것을 깨닫고 크게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교회의 일도 열심히 하면서 한쪽으로는 내 직업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진로와 신앙생활 간의 균형이 크게 깨져있는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각자 스스로 직업을 준비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은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이고, 어른은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갖고 준비하는 일들이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다. 물론 여가 시간도 보내고 봉사도 하고 모임에 참여하다 보면 취업을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고, 교회에서도 취업을 준비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취업을 잠시 잊고 살거나, 또는 반대로 취업에 대해서 지나친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둘 다 성경적이지 않다.
아담은 에덴동산에 있을 때 하나님이 지정하고 시키신 동산지기 일을 하였고, 에덴동산을 나온 뒤에도 땀을 흘리며 일해서 소산을 얻었다(창 2:15, 3:19). 이렇게 첫 인류인 아담도 항상 일하고 있었다. 예수님도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계셨다. 바울도 선교하면서 동시에 장막을 짓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행 18:2-3). 성경의 나온 많은 인물은 대부분 직업이 있었다. 주님과 동행한 자들도 직업을 가지며 신앙과 삶을 병행했다. 직업은 신앙생활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주님의 일을 하기 전 수련하는 과정이 되었다. 삶과 신앙이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일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지 않고 교회 밖에서도 일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믿음을 가지는 정도가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 각각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으시고 오늘도 일하고 계심을 확실히 알고 신뢰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직업을 갖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과정을 신앙과 구분 지으면 안 된다.
첫 번째 영상 <제이어스(J-US)의 ZION 소개 영상>
제이어스는 삶의 예배자들과 세상을 향해 빛을 전하는 이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말로 세상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하나님이 주셨다. 삶에서 선교의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에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영감을 드러내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그곳이 맛있는 식음료와 좋은 영감의 콘텐츠들을 제공하는 곳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그곳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7년의 준비하는 과정에서 ZION 사역을 하게 되었다. ZION에서 일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하였다.
이들은 일을 하는 장소가 곧 예배의 장소, 신앙생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 밖에서 사는 사람들과 만나는 곳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ZION에서는 식당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보통 직장과 직업에 ‘나’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이어스는 자신들의 직장과 삶의 현장을 본인들이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뚜렷한 현장으로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성경에는 달란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잘 사용한 자들에게는 주인의 칭찬이 있었다. 그러나 감춰두고 사용하지 않은 자에게는 책망이 있었다(마 25:22-29).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다. 문제는 이 달란트를 아는 것이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에 관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잘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각 사람에게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주셨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고 찾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 달란트를 통해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하신다.
두 번째 영상 이찬혁 <장례희망 (Funeral hope)>
자신의 재능(음악)을 이용해 영리하게 자신의 구원과 천국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고백한 사례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앨범, 세상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앨범이 되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께 드릴 작품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교회 밖의 삶을 통해서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영상 <거룩한 153 소개 영상>
음식점을 운영하고 말씀이 적힌 물건들을 판매하는 자판기처럼 다양한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153’ 법인의 사례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모든 원칙을 말씀에 근거로 두고, 사업이 곧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네 번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zwukpWALQo>
사람들은 보통 직업과 직무, 직장을 먼저 살펴보고 자신을 맞춰간다. 그러나 먼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이에 맞춰서 직업과 직무를 알아보고 마지막에 직장을 찾는 것이다.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곳에 취업하거나 이를 준비하게 될 경우, 취업과 직장 생활에 큰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성경적으로도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가 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무기인 달란트를 먼저 찾고 내 달란트와 흥미를 기준으로 직무와 직업을 찾고 결정해야 한다.
직업을 찾는 일을 외면하거나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 이면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달란트를 찾고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길 원하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확신과 믿음, 또 이를 해 나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만약 이를 찾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사역자들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도움을 구해라. 사역자들은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나의 달란트를 찾고, 삶이 신앙과 구분되지 않는 믿음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를 통해 만들어가는 삶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뿜어야 하고, 내 삶이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의 영역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또 삶 속에서 내가 배우고 터득한 전문성으로 교회 안에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여서 삶과 신앙이 구분 없이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자.
이렇듯 직업을 준비하고 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혼자 걸어가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함께하신다. 그렇기에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꿈꾸는 우리가 되자.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일하시고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작품이 나타나도록 함께 기도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또래별 강의 - 양육자로 준비되기
제 목 : 양육자로 준비되기
설 교 : 김인각 사역자님
본문말씀 : 시편 23:1-6
말씀요약 : 에셀나무_김가은리더는 더 넓은 시야로 양 떼를 먹이고 이끌며 함께하는 자
더보기우리가 생각하는 양육자란 무엇인가? 리더와 셀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리더는 양을 넘어서 양 떼까지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양에서 양 떼로 가면 더 큰 일이 있게 된다. 양끼리 갈등이 있을 때 조정해 줘야 하고,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어떨 땐 욕도 먹어야 한다. 전체의 양무리를 끌고 가려면 한 명한테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임의 흐름을 보고서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양육자로서 사모했던 것이 어느 것까지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학부엔 많은 팀이 있고 그 팀 가운데 불균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능팀 영혼들은 대학부에 기능적인 일들을 도맡아 하고, 양육팀 영혼들은 교회에 봉사가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 인력을 보충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하는 영혼들은 누가 양육해 줄 것인가? 대학부엔 마음을 같이해 주는 영혼들이 필요하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그런 영혼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대학부로만 부르심을?>
하지만 다 대학부로 부르시는 것일까? 아니다. 다를 수 있다. 그게 어디든지 간에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준비되기를 바란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마 24:45)
<양 떼와 함께하라>
갓난아기는 “응애” 하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엄마는 그 소리가 배가 고픈 것인지, 배가 아픈 것인지 알아야 한다. 영혼들도 영혼들의 언어가 있다. 이것은 영혼들과 함께할 때 알 수 있다(롬 12:15-16).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보면 레위인, 곧 그 당시 직분자가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팔아가면서까지 함께해 주었다. 모임에 함께 있어 주는 자의 부재로 인한 모임의 공백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커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이의 소외되고 상처받은 마음은 그대로이다. 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있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주신 양육자의 마음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내 이름은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것이 양육자의 길이다.
시편 23편에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는 부분을 생각하면 푸른 들판에 눕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스라엘은 다 광야 지대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곳이 노란색이고 듬성듬성 풀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성경에서 말하는 푸른 초장이다. 그곳의 특징은 한번 뜯어 먹으면 더 이상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자는 풀을 뜯는 양을 보면서도 그다음 초장은 어디일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것이 목자의 역할이다.
셀장과 셀원의 관계, 리더와 팀의 관계가 이와 같다. 주일에 말씀을 들어도, 수련회 때 은혜를 받아도 계속해서 목자는 영혼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민하면 영혼들이 살찌기 시작한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 구절처럼, 살찐 영혼들은 새끼를 잉태하게 된다. 새친구를 감당하기도 하고 셀원을 감당하기도 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하게 모든 것을 감당하다 보면, 영혼들은 유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쉼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물리적인 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에 있는 영혼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쉬는 물리적인 쉼이 필요할 수 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서 쉴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쉼도 주되 내가 격려도 해주면서 대신 해주기도 해야 한다.
‘기름 부으심’에 대한 구절은 코파리라는 벌레가 양의 뇌에 알을 까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코파리는 ‘미혹’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양의 뇌에서 코파리가 자라면(미혹이 생기면) 양이 미쳐서 동료 양들을 들이받는다. 목자는 기름, 곧 성령의 역사하심을 부어서 그것이 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영혼들 가운데 있는 미혹이 자리 잡지 못한다.
영혼이 성장하면 양육자에 대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요 21:15-18). 그렇지 않다면 상하고 그늘진 부분이 있을 확률이 높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그 안에 온전히 거한다면 그분의 음성이 들린다.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또래별 강의 - 교회는 하나님의 걸작품
제 목 : 교회는 하나님의 걸작품
설 교 : 나진환 팀장님
본문말씀 :
말씀요약 : 로뎀나무_김상배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 이제는 교회에 나눠주는 삶
더보기여러분은 하나님의 걸작품인가?
다른 장소에선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주제로 23살 이하 영혼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27살 이상인 여러분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었는가?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다.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 누군가 당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주어야 한다. 그런 경험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이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다. 여러분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은 자이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은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감독님께서도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새사람으로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대학부에서 이제는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부는 훈련받는 곳이다. 세상에 나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하고 하나님의 빛을 낼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는 곳이 대학부이다. 자신이 그런 훈련을 받고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누구에게나 할 일이 있다.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은, 받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영감이 없고, 열심이 없다면 그것을 알지 못한다. 대학부를 떠나기 전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연극)
여러분들이 대학부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분들은 이미 걸작품이 되었다.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런 고민을 다 해봤을 거라 생각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가 이런 모습으로 깎이길 원하는 기도와 내가 충만할 때, ‘내가 너무 예수님을 닮아가면 어쩌지?’ 하는 고민 그리고 ‘하나님,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모르십니다.’라며 원망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내 안에 깊은 어두움이 있고, 하나님은 이것을 모르실 거다. 하나님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다.’라는 고민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에는 분명히, 주인공이 마지막 종이를 읽었던 것처럼 주님을 깊이 만났던 경험이 있어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라며 고백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걸작품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된다.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버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가운데 온전치 못할 때, 주의 곁을 떠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안타깝지만 내가 주님 안에서 온전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지 않다면 결국 사라진다. 대학부 안에서 미래를 준비했으면 좋겠다. 주는 삶,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눅 6:38). 성경에서는 호구가 되라고 하지 않는다. 나눠주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나눠줄 수 있는 역량이 먼저 되어 교회에 나눠주는 자가 되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9) 여기서 ‘네 몸’은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몸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먼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보고 순종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 거듭난 자이고 Masterpiece가 되었으니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닮는다고 얘기할 때도 우리 한 명, 한 명이 예수를 닮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분들 한 명이 예수님의 귀, 발가락, 코가 되어 우리가 하나로 모였을 때, 예수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의 몸 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발가락 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 달란트를 주신다(눅 6:38).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는 보통 자기를 높이는 달란트가 아니라, 남을 돕는 달란트이다. 돈을 많이 벌게 하는 달란트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이건 여러분이 땅을 기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지, 그런 달란트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방언 통변의 은사도 나 혼자 기도를 많이 한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는 사람이 방언 통변의 은사를 얻는다. 그래서 나를 빛내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주께선 남을 빛내는데 초점이 있는 은사들을 주시니 그런 은사들을 받고 교회 생활 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데마를 아는가? 바울은 마가와 데마를 데리고 전도 여행을 가는데, 마가가 연약하여 쓸 데가 없었다. 2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은 마가를 버리고 데마를 데리고 가게 된다. 그러나 전도 여행 말미에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는 슬픈 일이 있었다(딤후 4:10). 그리고 바울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자, 마가를 자기에게 데리고 와 달라는 편지를 하게 된다.
정말 훌륭한 영혼이라도 지금 안 보이는 영혼이 되게 많다. 지금 당장은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국은 겸손이 중요하다. 맡은 자리를 의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어떤 봉사를 하든지 나중에 쓰일 수 있으니 열심히 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마지막 한 조각이 되기를 바란다. 이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다. 옆 사람들은 다 한 조각, 한 조각이 되어 있다. 여러분의 마음이 ‘내가 마지막 조각이 되어 교회를 세워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달라.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또래별 강의 - 리더 팀장 힐링캠프
제 목 : 하나님께 기억되는 리더 팀장
설 교 : 임재범 전도사
본문말씀 : 누가복음 24:14-17
말씀요약 : 샬리브_서혜영소망했던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기억되는 리더 팀장
더보기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며 주님이 기억하신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된다는 생각과 주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 소망함 때문에 오히려 주님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스데반은 오래 사역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지만, 그가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는 하늘나라를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일어선 것을 보았다(행 7:55-56). 스데반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길게 하지 못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그것을 목격하셨고 스데반이 죽음으로써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복음화가 이뤄지기까지도 수많은 선교사가 들어왔다. 어떤 선교사는 이 땅을 밟지 못하고 순교했지만 성경책을 전해주면서 그것을 받은 사람이 변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수많은 발걸음을 실패했다고 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그 일들을 기억하실 것이고 그들의 작은 행위를 통해 우리나라가 변하게 됐기 때문이다. 소망했던 것을 눈에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리더와 팀장 또한 각각 모임과 교회에서의 소망이 있다.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이 소망한 것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생을 마감할 때, 혹은 모임을 이동할 때 소망함을 품었지만 미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옮겨질 수도 있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바라고 원했던 것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나, 그리고 우리 교회를 기억하고 있으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망한 것들이 이뤄졌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기억하시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주님이 우리의 삶과 한 일을 기억하고 계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기간을 지나며 흘린 눈물을 주님이 기억하신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시고 주의 책에 기록하신다고 하셨다(시 56:8). 내가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고, 실패했다고 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 바삐 흘러가는 시간 속에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본문 말씀에 나온 두 사람도 근심에 싸인 채 바쁘게 가느라 주님이 옆에 계신 것을 보지 못했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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