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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 말씀 요약2026 청지기/2026 겨울수련회 [HEART-SET🩵] 2026. 3. 14. 02:48
대학부 겨울수련회 특집호
여는예배
제 목 : LOVE WINS ALL (롬 8:37-39)
설 교 : 조은석 사역자님
본문말씀 : 로마서 8:37-39
말씀요약 : 1팀_이은호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ADwAjSpOlpA?si=JbP1W-YT80-isyV2


0123모든 것을 다 이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자!
더보기▶ 내 마음을 열어서
이 시간은 ‘마음을 여는’ 개회 예배이다. 이 시간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3박 4일의 수련회 동안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준비하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준비된 자에게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말씀을 기대하고, 응답해주실 기도 제목을 기대하는 자에게는 이번 수련회가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마음을 연다’라는 표현은 인격적인 존재들의 관계에서 쓰이는 어구이다.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내 연약함을 고백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과 친밀함을 느낀다. 즉,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연다라는 표현은 ‘내가 내 연약함을 하나님께 드러내고 고백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 죄인을 위해 먼저 마음을 여신 하나님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세상의 관계와 다르다. 세상의 관계는 마음을 서서히 열어 가는 관계이며, 서로 완전히 친밀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열어 가는 과정 없이 이미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여셨다.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사랑이 많고 죄가 없으신 창조주이시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거룩하지도 않고 경건하지도 않으며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죄인이다. 기록된 바,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 이미 심판받고 멸망에 이를 자들이다 (요 3:18).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시작부터 비대칭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죄인인지도 몰랐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 주셨다.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미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롬 5:6-8). 이미 우리에게 마음을 여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고후 5:21). 이는 곧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라는 의미이다.
▶긍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
요컨대, 구원할 이유가 없는 우리에게 먼저 마음을 여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긍휼(矜恤)’은 원어로 ἔλεος(엘레오스)라고 표현되며, 이는 ‘체휼하다’, ‘책임지고 직접 도와주다’라는 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은 “너를 구해 주었으니 이제 홀로 잘 살아 보아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직접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신앙생활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간섭하심과 도우심을 입으며 외롭지 않게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끝없는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화평과 은혜를 잃어버리고, 병들고, 번뇌하며 여러 문제로 인해 다시 실족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것도 다 아셔서 먼저 그 아들로 상함을 입게 하시고 찔림을 당하게 하시며 십자가로 모든 짐을 짊어지게 하셨다 (사 53:5). 우리가 넘어질 것을 아시고도 “이미 넘어질 너를 알고 내 아들을 보냈으니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신다 (마 11:28). 그 가운데서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죄를 참소하며 우리를 부끄럽게 하나,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긍휼로 인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라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확정하는 일이며 결국 ‘회개’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 마음을 연다는 것은 ‘내 연약함을 하나님께 다 드러내고 고백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마음을 여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주의 보좌 앞에, 우리를 체휼하시는 대제사장께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히 4:12-16).
▶ LOVE WINS ALL : 긍휼을 힘입어 사랑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기대하시며 끝없는 인고(忍苦)로 우리를 참으셨다(벧후 3:9). 그 오래 참으심 앞에서 우리는 때로 진실히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또 다른 때에는 다시 간사해지고 교만해져 신앙이 변질되기도 한다. 이토록 매번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타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마음을 바로 갖추고 악한 죄의 법과 끊임없이 싸워 이길 필요가 있다 (롬 7:21-8:2).
원수는 갖은 문제를 통해 우리를 정죄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한다. 우리를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생각을 어둡게 만든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 혹은 관계 가운데 상하는 일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다 이긴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은혜로운 이 자리에서 원수의 방해 또한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거슬리기 쉬운 때인 만큼, 조금의 틈도 원수에게 보이지 않도록 늘 근신하고 깨어 있자. 자신 안에 조금이라도 죄 된 마음이 들어왔다면 즉시 무릎 꿇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자.
“긍휼을 힘입고, 매일 회개하여, 모든 것을 다 이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첫째 날 어스워십
제 목 : 참 긍휼을 아는 자
설 교 : 김동수 목사님
본문말씀 : 누가복음 15:11-32
말씀요약 : 2팀_이예은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wkGPXNVNzR8?si=nGdtr_gHUAxLbDtr


0123긍휼하신 하나님의 마음
더보기▶ 회개의 시작 : “일어나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면서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재물을 다 모았을 때는 의기양양했지만,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고 나라에 흉년까지 들어 궁핍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청춘의 꿈과 야망, 나름의 뜻과 계획을 좇아 나아갔으나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실의와 절망, 고독과 궁핍을 경험하고, 살 길이 막막해 더 이상 붙들 것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힘들 때 주님이 생각나고 말씀이 떠오르며, 내가 은혜받은 그 자리와 말씀이 생각나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한다. 끝까지 절망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풍랑이 있어도 방주 안에 있으면 살듯이 예배의 자리로,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 20절의 “이에 일어나서”라는 말씀처럼 일어나 수련회 자리에 온 것,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첫걸음부터가 회개의 시작이다. 참된 회개는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때 첫 행동이, 어디를 향해 갈지가 중요하다.▶ 참 긍휼하신 하나님의 마음
19절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아들의 양심은 살아 있어 주 앞에 죄송스럽고 민망한 마음으로 일용직과 같은 품꾼으로라도 받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장은 다르다. 여전히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시며 측은히 여기시고, 오히려 품꾼이 아닌 자녀로 삼으신다. 측은히 여긴다는 것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기에 긍휼을 베풀어 그 아들 예수를 보내 주셨다. 우리는 주와 멀리 있었지만 주께서 먼저 다가오셨다.
돌아온 아들을 취조하지 않으시고 그저 안아 주시며, 말보다 행동으로, 무조건적으로, 즉시 용서하신다. 그렇게 돌아온 자녀를 안아 주시고 입을 맞추시며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심으로 여전히 아들임을 확증하신다. 떠났어도, 돌아왔어도 아들임을 선언하신다. 이것이 참 긍휼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주님은 급히 달려와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핑계하며 오래 버티다가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탕진한 뒤에야 돌아온다. 지금껏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24절 말씀처럼 회개는 아들 된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다시 얻은 것이며,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분리되었던 자녀와 다시 결합하게 된 만남이다. 우리의 돌이킴과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를 통해 실제적으로 보여 주신 참 긍휼이 있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우리가 돌이켜도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살 수 없고, 아무리 주께서 긍휼히 여기셔도 우리가 돌이키지 않으면 그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우리가 살 길을 얻은 것은 오직 주의 긍휼 덕분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회를 얻은 것이다.▶ 진짜 탕자는 첫째 아들 : 주의 마음을 모르는 자
천하고 무시받는 직업이었던 창녀와 목동, 세리 등 죄인들과 식사하는 예수를 바리새인들이 못마땅해했던 것처럼, 첫째 아들도 동생의 귀환을 못마땅히 여긴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준과 공로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해 왔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요청을 받아 사역이나 직분을 내려놓게 되거나 다른 제안이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해 왔는지가 드러난다. ‘내 일’로 섬겼다면 도전감과 불만이 올라오지만, ‘주님의 일’로 섬겼다면 기쁘게 순종할 수 있다. 교회는 대학부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예배당 사역, 각 기관의 필요, 법과 재정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만을 생각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교회 전체를 바라보는 리더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아버지의 긍휼한 마음은 더 많은 자녀를 품고 함께 가게 하는 데 있지만, 첫째 아들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 이처럼 신앙생활하는 자는 자기 지위와 공로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상황마다 섭섭함을 쌓아 두다가 결국 어느 순간 마음이 돌아선다.
26절에서 첫째 아들은 종을 불러 동생의 일을 하나씩 따져 물으며 심문하듯 취조한다. 아버지께는 섭섭해하며 동생에게는 분노한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돌아온 것을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 27절 말씀처럼 오히려 남처럼 여기며 못마땅해한다. 그러나 28절에서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것처럼 첫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먼저 다가가 다정하게 권하신다. 첫째 아들은 그럼에도 29절 말씀처럼 분노에 휩싸여 항변한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아버지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아들로서 섬긴 것이 아니라 종처럼 의무감과 자기 의로 섬겼기 때문이다.
자신은 의롭고 동생은 정죄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첫째 아들이야말로 아버지의 마음에서 멀어진 탕자이다. 아버지와 가까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모르는 자이다. 주님도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내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는 긍휼을 깨닫지 못한 모습이다.▶ 참 긍휼, 진실한 회개, 참 사귐
죄의 극단으로 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했다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돌아와야 한다. 스스로 죽어 마땅하고 주님 앞에 면목없고 염치없는 자라고 느껴질지라도, 회개하는 자를 주님은 따져 묻지 않으시고 품어 주신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우리 삶에 여러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텐데,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용납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더욱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며 매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자.
좌절과 낙심 가운데서도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방향을 정하고 결단했을 때, 주님은 먼저 달려와 나를 맞아 주심을 깨닫고 속히 돌이켜 주의 사랑 안에 거하자. 나 같은 자를 참아 주시고 살리시고 용납해 주신 긍휼을 악용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둘째 날 어스워십
제 목 : 내려놓음, 내어드림
설 교 : 김동수 목사님
본문말씀 : 마태복음 16:21-28
말씀요약 : 7팀_김태현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2BvVdtGyvZY?si=fQqzNoUO4CHzCLN1


0123내려놓음 없이는 될 수 없는 내어드림
더보기▶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자가 교회의 사정을 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참아 주셨다. 어제의 내용과같이, 주님은 먼저 우리를 향해 달려오셨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연약할 때,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찾아오셨다. 피 흘리기까지 한없는 그 사랑을 우리는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사정과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소중함, 감사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러한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교회의 시작이다. 주님은 이때로부터 교회를 말씀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시지만, 분명히 부활하시며, 하늘로 가신 후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사 아버지의 말씀을 증거하실 것이라는 승리의 선포를 하셨다. 그러나 성경에 ‘때가 차매’라는 표현이 있듯,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이 밝혀진 때에서야 비로소 이 모든 것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 내려놓지 않으면 거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실 것에 대한 말씀에 간하여 책망하였다. 물론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게 보일 수 있고, 열심히 주님을 사랑한 행동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뜻을 왜곡한, 철저히 인간적인 발상으로 보신다. 거기에 더해 베드로 자신을 위한 생각으로 여기신다. 주님은 그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다.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의 생각을 좇아서 가는 길은 결국 불선한 길이다(사 65:2). 나름의 좋은 생각처럼 보여도, 항상 악할 뿐인 게 인간의 생각이다(창 6:5). 그러므로 주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생각을 돌이키라 하신 것이다.
참 헌신을 위해선 내려놓음이 먼저 되어야 내어드림이 되는 것이다. 모임에서나 교회에서나 거치는 자(걸림/장애)가 되지 말자(고전 10:32). 교회 안에서 당연히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몰입되면 그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부인하라 했지만, 오히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내어드리는 것이 아닌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꺾지 않으면 주님의 생각을, 교회의 방향을 꺾게 되고,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게 된다.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면 자기 영혼은 망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의 집착을 내려놓으면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는 부분, 예배의 어려움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한가?(마16:26) 자신의 고집이 무언가를 얻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고집은 목숨을 잃는 길로 인도할 뿐이다. 한 번의 나의 몰입된, 집착된, 쾌락적인 생각이 영원한 문제가 되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온 천하를 얻겠는가? 영혼의 목숨을 얻겠는가?
▶ 내려놓음이 있어야 참된 내어드림이 있다
내려놓음이 없이 내어 드림이 될 수 없다. 내려놓음이 없이 직분을 맡게 되면 부담이 생기고, 교회에 대한 거치는 돌이 되고, 결국 후회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비워야 한다(빌 2:5-7). 여전히 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일부만 받아들이고, 그리고 희석하게 된다. 내 생각과 자꾸 싸우게 되며 갈등 구조가 일어나 신앙생활이 어렵게 된다. 나를 품어주시고, 받아주시는 그 긍휼한 사랑 앞에서 더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히 드린 바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잘 안 바뀐다, 그러므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은 힘들다. 그럼에도 예수 믿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우리가 은혜받았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걸림이 가장 크게 걸림이 되는 것은 ‘나’이다. 자아이다. 기도도 때로는 믿어지지 않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울기도, 탄식하기도 깨닫기도 하다가 돌이킨다. 이러한 부분에서의 반복이 아닌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겨 가고 승리해 가면서 주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 가운데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야 한다.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해, 감독님의 가고자 하는 방향에 전적으로 아멘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도, 시간도, 성격도, 직업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 안에 좀 더 자고 싶고, 눕고 싶고,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면 헌신은 안 되는 것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그렇게 내려놓지 못하던 것들을 드린바 되는 수련회가 되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셋째 날 어스워십
제 목 : 신실하고 긍휼한 교회와 나
설 교 : 김성현 감독님
본문말씀 : 베드로전서 1:22-25
말씀요약 : 1팀_정수진


0123참 믿음, 참 소망, 참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
더보기▶ 오직 하나님의 세계에만 있는 진리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임의로, 우리의 생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가 우리를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함이며, 우리를 보전하셔서 그가 계획하고 준비하신 대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며, 이는 하나님의 진리 중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주님은 일시적 사랑이 아닌, 전부를 내어주신 영원한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신다. 세상은 이 진리를 잘 믿지 않으며, 믿는 자들 또한 세상의 영향을 받곤 한다.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이미 얻었으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
정욕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고 있는 세상은 진실에 결핍이 있거나 거짓으로 가공되어 있고 변동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도 이 세상의 영향을 받기에 그를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진리는 하나님의 세계 하나뿐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참되며 분명하지만,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참과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탐욕과 거짓이 없으나, 우리는 진실을 박대하고 거짓된 것이 활개 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단은 세상에 악한 생각을 계속 주입하고 있다. 때문에, 세상의 기준 따라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취하여 살도록 분별함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대로 움직이며, 하나님 나라에 기여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만난 사람들은 종교적인 것으로 가득한 껍데기뿐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랑과 긍휼이 없이 하나님을 기만하고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일부는 회개했으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 모습마저도 세상에 물든 것으로 보였다.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모습이었으며 사랑과 인자, 긍휼이 없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와 같기에 우리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이 땅을 살아가며 육신적으로 필요한 부분도 있으나, 이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육신이 죽으면 남는 것은 짧은 과거와 영원한 실패뿐이다.
▶ 진리: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진실된 마음
진리는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진실한 마음, 생각’이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애쓰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며, 자신을 향한 변치 않는 그 분의 진실에 인생을 걸고 있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세상을 따르지 않고 그의 진리와 세계에 맞춰 살아간다. 주가 만드신 창조된 세계, 주가 준비하시는 다음 세대에 맞춰서 가려 한다. 믿음 없는 자는 보험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도 따르며 발 벗고 일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자가 어렵고 하기 싫은 도전을 그와 함께 하기 원하신다. 최고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을 원하신다.
▶ 그의 나라를 향한 충실과 사랑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주의 말씀에 신빙성을 두고 마음을 여기에 두는 것 (2) 그 분을 정말 신뢰하는 것
이에 대한 결단이 곧 믿음이다. 믿음이 큰 만큼 천국은 자기 것이며, 우리를 둘러싼 강력한 도우심으로 우리 곁에 주가 머물러 계시기에 외롭지 않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대한 충실함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와 같으며, 그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인애의 사랑을 품고 계신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외면할 가능성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신뢰하며 따르려는 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성공시키려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일은 그를 기뻐하고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다. 주의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고 배반하지 않으며 모든 죄를 회복시킨다. 그가 내 모든 죄의 무게와 장벽을 무너뜨리고 나를 살리시 영원히 책임지실 것이 곧 진리이다. 우리는 잠시뿐인 세상이 아닌 진리를 따라야 한다. 주님은 내게 사랑을 선택할 기회를 베풀어 주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혹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기질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 또한 갖고 있는 것은 세상 풍조와 마귀의 이간질 때문이다. 고장나서 활용을 못하고 있지만, 성령으로 회복시켜 주셔서 우리의 내장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주께서 기대하고 계신다.
▶ 참 그리스도인의 결단
그리스도 피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참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절대 부인하고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생각으로 결정해도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운명, 내 사명의 몫, 세상을 감당할 분량, 사랑의 본분은 이 곳, 이 교회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얻어낼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자들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며, 그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하며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셨다. 이는 나를 완전히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지탱할 수 있도록 나를 영원히 품으시고 소유하신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 없는 사랑이 아닌 참 믿음, 참 소망, 참 사랑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생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견디고 채워가기를 원하신다. 세상에서는 겉모습으로 판단하나, 그것은 가치의 대상이 아니다. 긍휼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사람이 타락하면 우리는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 예수를 믿고서도 나의 것을 취할지, 버릴지에 대해 우리는 확실히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을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절대 놓지 않으시고 어떤 더러운 존재도 우리를 흠집내지 않도록 마음의 뜻과 생각을 보호하고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큰 영광의 이끄심으로 은혜와 사랑 속에서 성공하는 신앙생활을 이어가자.
대학부 여름수련회 특집호
결단예배
제 목 : HEART-SET,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결단
설 교 : 이찬희 사역님
본문말씀 : 고린도후서 1:18-20
말씀요약 : 7팀_이소영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live/XX1MQZLG33Q?si=SFxXsyz9xIbfBGJ8


0123주님과 함께 가는 Heart-Set
더보기▶ ‘아멘’으로 결단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소중하다. 수련회라는 시간이 어땠을 지 모두 다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수련회장을 떠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그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남겨진 시간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마음의 결단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내가 ‘예’하며 같이 달려갈 결단을 우리는 마음에 가져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세상에 오셨을 때 그것을 거절하거나 외면치 아니하시고 포기치 않으셨다. 끝까지 그는 모든 일에 ‘예’하며 순종하며 그 길을 달려가셨다. 또한 이제 남은 우리들이 그 앞에 아멘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고후 1:18-20).
우리는 삶으로 돌아가게 되면 마음이 시들거나 마음을 금세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멘하기로 결단하는 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거절하고 싶고, 그 말씀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육체이지만 이러한 육체의 본성을 끊어 낼 수 있는 건 ‘아멘’ 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 하고 마음을 정할 때, 당시엔 마음이 합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은혜를 지속할 수 있게 되고, 생명 가운데 서 있을 수 있는 자가 된다. 모든 순간에 ‘아멘’ 하며 화답하는 자들이 되며 결단한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아멘’으로 화답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
▶ 영의 생각으로 결단할 때 교회는 세워진다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개인의 욕심이다. 나의 욕심, 내 생각, 나의 원함 등 육신의 생각을 가진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시험에 들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어 자신이 되려 시험에 들기도 한다. 심지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가 교회(모임)에 있다면 그 교회(모임)는 어려움을 당한다. 반대로 영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단한 사람이 모임에 있으면 모임에 생명이 나타난다. 이러한 생명의 변화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나 한 사람이 마음을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다. 그때 기쁨과 소망, 회복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 몸된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나의 것을 취하기보다 포기할 것을 무섭게 결단하자. 희생과 헌신, 긍휼, 참 사귐 앞에 나의 삶을 드리자.
▶ 고난 속에서도 은혜를 지속하라
은혜를 지속하는 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질 때 하나님께선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그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며 나아가는 자들, 주님 앞에 결단하고 마음을 드린 자들이 환경에서 어려움과 힘듦을 당해도 은혜를 지속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
나의 어려움(슬픔, 상함, 고난, 힘듦)과 나의 기쁨(행복, 평안)이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생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시는 분이심을, 또한 상 주시는 이심을 알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힘듦을 자처할 수 있고 고난을 자처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편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편함이 아닌 오히려 ‘평안하라’ 이야기한다(고후 13:1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안하고 말씀으로 세워진 자녀들에게 이제 나가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너희가 고난 받으라’, ‘너희 육체에 고난을 채워라’라고 말하고 있다(롬 8:17, 골 1:24).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도하심을 믿고 그 마음을 잃지 말자. 고난 가운데 있을 때도, 슬픔 가운데 있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결국 주님의 소망은 교회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은 교회의 일에 함께하는 것이다. 힘들어 보이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은혜의 현장을 지키고 만들어가려는 결단이 있는 자는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과 몫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의 소망이 교회에 있음을 알고 내가 순종하기로, 섬기기로 결단할 때 하나님께선 나를 불러 사용하신다. 그렇기에 나의 원함보다는 부르시는 곳에서 순종하길 바란다. 그러한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 주님의 소망, 교회와 함께 끝까지 가라
우리 교회의 회복은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우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마음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닮길 원한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셨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만 하시는 참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제자들과 같이 다니면서 모든 참 사귐을 보이셨다. 우리의 HEART-SET은 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가 먼저 모든 참 긍휼, 참 헌신, 참 사귐을 다 보여주셨을 때 우리는 그와 같이 가는 것이다. 교회와 그가 세우신 목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 일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서 주님의 소망으로 교회에 끝까지 함께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이 땅에서 내 원함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조금 실패하고 돌아가더라도 상관없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이다. 영원한 성공이 보장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결단의 마음을 취하자. 내게 다른 영혼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는가? 교회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는가? 그런 마음으로 Heart-Set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결단했을 때 주님이 능력을 주신다. 내 스펙과 외모, 상황, 환경 등 모든 것을 뛰어넘어 우리의 시간을 이끄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달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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